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황교익/비판과 논란/자극적 폄하 (문단 편집) === [[단맛]]은 갈구의 맛이다 === >설탕전쟁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전쟁 전에, 단맛에 대한 인식 수준을 확인하기 위해 간혹 쨉을 날리고 있다. >아래의 글도 그 쨉 중의 하나이다. > >단맛은 불쾌하기도 하다 링크 > >댓글들을 보면, "단맛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좋아하게 되어 있다"는 나름의 과학적 지식을 크게 신뢰하는 이들이 많다. >우리는 늘 그렇게 배웠다. >당은 탄수화물이고, 이게 우리 몸의 에너지이니, 탄수화물이 분해된 당의 단맛을 본능적으로 좋아하게 되어 있다고. 그런데, 내가 설탕을 한 숟가락 퍼먹어보라 한 것은 그 당이 불쾌하게도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확인해보라는 뜻이었다. >여기에 역치 운운하는 것은 핵심을 벗어난 의견이다. 이때까지의 과학은 '특정한 농도의 당이 기분을 좋게 한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 당은 대체로 일정한 농도 이상이면 그 단맛의 강도가 비슷하게 느껴지므로 설탕을 한 숟가락 퍼먹든 동량의 물에 타서 먹든 내 몸이 느끼는 단맛의 강도에는 큰 차이가 없다. >가공식품을 만들 때에 일정한 농도 이상의 당을 넣지 않는 것은 그 단맛의 강도가 높으면 거북해할 것이라는 걱정보다는 단맛의 강도 차이가 별로 없으니 원가 절감 차원에서 그리할 뿐이다. > >어떻든, 내가 "단맛은 불쾌하기도 하다" 하고 말을 던진 것은 이 현상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내놓기 이전에 자신의 감각에 대해 한번쯤 집중해보라는 뜻이었다. >"인간은 단맛을 본능적으로 좋아하게 되어 있다"는 정도의 지식밖에 가지고 있지 못한 '외눈박이 과학자'의 말을 믿지 말고 자신의 감각부터 살펴보라는 것이었다. >쨉을 던졌으니, 마무리도 해야겠다. > >단맛의 음식을 먹으면 인간의 뇌에는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나온다. >이 도파민을 두고 일부의 과학자들은 쾌락을 느끼게 해주는 물질이라 설명하고, 그래서 당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좋아하게 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당이 도파민을 분비하게 하는 것은 맞으나, 도파민의 기능에 대해서는 잘못 알고 있다. >도파민은 쾌락을 주지 않는다. 기분을 좋게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도파민은 도파민을 분비시켜준 그 음식을 계속하여 먹으라고 몸에 사인을 주는 물질이다. >즉, 단맛의 음식이 입에 들어오면 그 단맛의 음식을 계속해서 먹으라고 분비되는 것이 도파민이다. 도파민을 개념 짓자면, '쾌락의 물질'이 아니라 '갈구의 물질'이다. 단맛의 음식을 먹으면 도파민이 분비되어 그 단맛의 음식을 더 많이 더더더 많이 먹게는 하지만 쾌락을 주지는 못한다. > >도파민은 음식을 더 먹게 만드니, 내 감각에 집중하지 않으면, 그 도파민으로 인해 쾌락을 얻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착각하게 된다. 갈구하는 것과 쾌락을 느끼는 것은 다름에도 우리는 이를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 >단맛은 그 단맛의 음식을 끝없이 갈구하게는 하나 쾌락에는 이르지 못한다. >그래서 단맛은 중독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 마약중독이나 게임중독도 똑같은 도파민중독이다. 마약중독자는 마약에 취한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고 할 뿐이며 게임중독자는 내내 게임만 하기를 갈구한다. >내 몸이 단맛의 음식만 먹겠다고 고집하고 있으면, 단맛중독이라 보아야 한다. 단맛중독은 결국 그 어떤 음식에서든 만족을 얻지 못하게 할 것이고.. 불행한 일이다. > >내가 '외눈박이 과학자'라 한 것을 두고 심하지 않느냐는 반응이 있다. >과학자이면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말을 던져야 할 것인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었다. >특히 도파민의 기능 정도는 알만한 과학자가 당에 대해 그냥 "인간이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하고 말하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지 않고서는.. 나는 의심하고 있다. >그 의심이 확인되면 '거짓말하는 과학자'가 될 것인데, 당장에는 '외눈박이 과학자'로 둔다. > >* 사족 * >단맛도 그렇고.. 사실 음식 그 자체에 쾌락의 무엇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뇌를 들여다보아도 음식쾌락은 참으로 복잡하다. >틈나는 대로 하나씩 풀어볼 작정이다. >---- >[[https://foodi2.blog.me/220700248055|단맛은 쾌락을 주지 못한다]][[https://archive.is/1QRLB|@]] >“설탕에 죄가 없다.” >한국에서 식품과학의 지식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인데, SNS에서 보면 유행어처럼 쓰인다. 이 뒤에는 으레 “그 설탕의 음식을 과하게 먹어 탈이 나고 하는 것은 각각 개인의 책임이며..” 하는 뜻의 말이 붙는다. > >농약에 무슨 죄가 있겠는가. >사이다에 농약을 타서 먹인 자에게 죄가 있는 것이다. 칼에 무슨 죄가 있겠는가. 그 칼로 사람을 죽인 강도에게 죄가 있는 것이다. > >죄라는 말은 인격체에게 붙이는 것이다. "설탕은 죄가 없다"는 말장난일 뿐이다. 그들이 들고나온 '죄'라는 단어를 굳이 설탕과 관련 지어 말을 하자면 "아무 음식에나 설탕을 처바르는 자"를 앞에 두고 그 죄를 논하여야 할 것이다. > >조리사 시험의 실기 음식 레시피를 보라. >한식은, 설탕 안 들어가는 레시피를 찾기가 어렵다. 탕이며 조림이며 구이며 볶음이며 생채며.. 죄다 설탕이 들어간다. 대중식당 음식을 하나하나 맛보면, 설탕 안 들어가는 게 밥 빼고는 찾기가 어럽다. > >한국음식에서 설탕의 문제는 설탕 양의 문제가 아니다. 아무 음식에나 설탕을 처바르는 것의 문제이다. 이건, 건강의 문제가 아니다. 감각의 문제, 음식을 먹는 즐거움의 문제이다. > >단맛은 갈구의 맛이다. >단맛의 음식이 입에 들어오면 그 음식을 더 먹으라 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분비된다. 그러니 밥상에 있는 단맛의 음식을 한번 입에 대었다 하면 자동으로 그 음식에 자꾸 손이 가게 되어 있다. 계속 먹게 만드니까 그게 맛있는 음식이구나 하고 착각을 하게 된다. > >이 '단맛의 착각'을 이용하면 그 어떤 재료이든 적당히 먹을만하게 조리할 수 있다. 한식을 내는 식당들이 대체로 재료의 질에 무감각하게 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도저히 입에 넣을 수 없는 최악의 재료가 식당에서 사용되는 실태를 텔레비전 고발 프로그램에서 종종 보게 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 >'단맛의 착각'은 개인의 감각 영역을 넘어서는 문제이다. 한 사회의 일상음식은 그 사회구성원 각자의 자유의지에 의해 선택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왜 거의 모든 한국음식에 설탕이 들어가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사회인문학적 고찰 대상이 될 수 있다. >“설탕에 죄가 없다”는 말로 이런 사회인문학적 고찰을 차단하겠다는 의도이면 지금의 이 설탕 문제에 '식품과학(자)의 죄'도 함께 논의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 >[[https://foodi2.blog.me/220748851074|"설탕에 죄가 없다"고 말하는 자의 죄]][[https://archive.is/tzwcl|@]] 황교익이 사실상 설탕과 단 맛을 싫어하는 이유이자, 그가 지목하는 모든 한식의 문제의 시발점이자 동시에 모든 사회 문제의 시발점이며, 한국을 미개하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황교익이 작성한 '''설탕수저론, 그 시작은 이렇다'''[[https://archive.is/yt6bs|@]]라는 글에 링크로 걸어놓은 한국일보의 '''‘설탕수저’ 물고 나온 20-30대는 “태생적인 단맛 중독자”'''[[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469&aid=0000123122&sid1=001|#]][[https://archive.is/d34Pz|@]]란 기사와 [[백종원/논란]]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일보]]와 같은 미디어들은 [[마리텔]]에 나온 [[백종원]]을 설탕 유행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일방적으로 지목하였고 공격하였으며, 황교익 또한 그 언론의 매도와 공격에서 선봉에 서 있었다. 황교익은 이 시기에 [[백종원]]과 [[설탕]]을 저격하기 위해 '''설탕전쟁'''을 준비하였고 이후 EBS 특강에서도 말하게 되는 '''설탕 수저론, 중독, 도파민, 갈구, 환각파티, 미개함'''을 주제로 자신의 사상을 최종적으로 정립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아마 자신이 싫어하게 된 떡볶이와 치킨(그 중에서도 양념치킨)에 설탕이 쓰인다는 점이 황교익의 사상에 확신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위의 글들을 정리하면 간단하다. 단 맛 = 도파민 분비, 도파민 = 갈망, 갈망 = 중독, 중독 = 미개함이고 따라서 단 맛 = 미개함이다. 도파민은 원함을 일으킨다와 당분을 먹으면 도파민이 분비된다는 것, 그리고 도파민이 과도하게 분비되면 중독을 일으킬 수 있다가 각각이 참이라고 해도 그 모든 것을 종합하여 설탕이 중독 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분해의 오류에 속하고, 도파민이 일으키는 수 많은 기능들 중에서 일부 기능으로부터 도파민 전체의 속성을 단정짓는 것 같은 행위는 결합의 오류에 속한다는 점에서 얼마나 많은 [[논리적 오류/비형식적 오류|비형식적 논리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단순히 사실을 늘어놓는 다고 주장하는 모든 것이 사실이 되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자기 혀에 설탕을 부어보곤 불쾌하게 느껴졌으니 불쾌하다고 하는 점에서 자연주의의 오류도 엿보인다. 거기에 근거라고 내세운 켄트 베리지 교수의 실험에 대한 해석은 [[문맥을 무시한 인용]]이자 [[문헌오염]]으로 이 실험은 신경독으로 도파민 분비를 차단했을 때 의욕이 사라진 것을 발견한 실험이다. [[도파민]]은 원함 체계와 좋아함 체계 중에서 원함 체계에 관여를 하며 동시에 인간의 의욕과 행복, 기억, 인지, 운동 조절 등 뇌의 다방면에 관여하는 물질 중 하나일 뿐이다. 행동과 그 행동을 하고자 하는 의욕에 관여하기 때문에 도파민 자체는 음식을 찾으려는 의욕에 영향을 주지 먹고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나 만족하는 것과는 별개인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설탕을 맛보고 섭취하는 과정이 도파민 분비를 유도한다고 하지만 다른 자극이 도파민을 분비시키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당류가 유독 도파민 분비를 많이 촉진한다고 하여도 그게 얼마나 많이 얼마나 자주 얼마나 장기적으로 얼마나 규칙/불규칙하게 섭취해야 문제가 될만큼 많이 분비되는가에 대한 데이터 없이는 무의미한 말일 뿐이다. 그리고 도파민 분비 유도나 촉진과 별개로 당류가 갖고 있는 열량에서 오는 만족감과 포만감 엄연히 존재한다. 오히려 [[사카린]]이나 [[아스파탐]]과 같이 단 맛만 느껴지는 경우 설탕과 달리 열량이 없어 과식할 우려가 있다는 비판을 고려하면 단맛 전반에 대한 혐오감은 초점도 제대로 맞추지 못한 셈이다. 거기에 도파민은 과도하게 분비된다면 건강에 해롭지만, 너무 적게 분비되어도 문제가 될 수 있는 물질이다. 도파민이 중독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항상 중독 현상을 일으키는 것은 결코 아니며, 인간의 몸은 항상성을 유지하려고 하고 인간의 뇌는 유연하기 때문에 노력하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설탕은 도파민 분비와 재흡수하는 기전에 영향을 미치고 손상을 일으킬 수도 있는 [[코카인]]이나 [[메스암페타민]]이 아니다. 그리고 외눈박이 과학자라고 운운하며 그들의 헛된 말에 중독되었다는 글을 써놨는데, 도파민의 존재를 밝힌 것도 도파민의 기능이나 역할을 밝힌 것도 전부 과학자들이 한 것이고 전문가와 학계의 지식과 대중의 지식 혹은 상식 사이에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갭을 이해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거짓말 하는 과학자를 운운하는 짓은 단순한 [[반지성주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단맛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좋아하게 되어 있다라는 말은 어디까지나 과학자들의 연구를 축약하는 말일 뿐이고 의무교육 시간에 간단하게 배우고 넘어가기 위해 나오는 토막 지식일 뿐이다. 인간을 비롯한 생물이 당류를 좋아하는 것은 지방이나 단백질보다 소화에 유리하여 쉽게 에너지를 얻을 수 있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은 당류에 민감하고 당류를 쉽게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고 그런 형질이 우세한 경향을 보일 수 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본능적으로 당류를 좋아한다는 말에 어느정도 부합하게 된다. 이런 당류의 문제는 과거와 달라진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영양과다 등으로 인한 비만, 고혈당으로 야기되는 건강의 문제에 해당되는 게 맞고, 평소에 지속적인 과당 섭취로 인해 인슐린 수치가 높아 과당류가 포도당으로 전환되는 대신 글리코겐으로 변화하고, 높은 인슐린 수치로 랩틴(식욕억제 호르몬) 저항성을 갖게 되는 생화학적 문제이다. 당류 선호는 황교익이 말하는 것처럼 사회문화에 전반이 퍼져있는 질병이나 사회 지배 계층이 인민을 억압하기 위해 뿌린 통제수단 같은 것이 아니다. 이런 오류 투성이 주장이 나오는 것은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황교익이 [[도파민]]이나 [[탐닉]]의 개념에 대해서도 전혀 이해하지도 못한채 함부로 도파민, 갈구, [[중독]]이라는 단어를 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걸 자기 영역도 아닌 사회인문학에서 남의 영역의 것을 끌어다 쓴다는 점에서는 더 악질적이다. 거기에 자기만의 사상을 정립하고 난 뒤에 전문가들을 향해 휘두르는 적대감에서는 [[반지성주의]]도 느껴진다. [[도파민]]이나 [[엔돌핀]]과 같이 우리 몸에서 분비되는 화학물질, 그외 생화학 현상과 생리 현상에 대해 천연마약, 천연환각제 등등의 자극적인 표현을 써가며 [[생물학]]을 [[사회학]]과 [[인문학]]과 엮어서 [[중독]]. 정확하게 말하자면 [[탐닉]]을 통해 사회현상이나 문화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은 수 없이 많다. 그리고 이런 글들의 다수는 기업이나 언론이 [[공포 마케팅]]과 사적인 이익을 위해 [[사카린]], [[글루텐]], [[아스파탐]], [[MSG]], [[카제인 나트륨]]에 대해 날조를 일삼았던 것과 유사한 패턴으로 어떤 정치적, 경제적 목적으로 조직적인 행보를 보이곤 한다. 특히 '''언론과 건강 프로그램들이 글루텐 불내증과 탄수화물 중독을 내세워 글루텐 탄압하고 시장에 글루텐 프리 제품이 유행시키고 정부가 이 악행을 방관하거나 숟가락을 얹는 것을 생각하면 어딘가 기시감이 들지 않는가?''' 이런 것들과 황교익의 글을 자세히 보면 사실을 말하고 있지 않거나 사실을 말하더라도 과학자들이 조심스럽게 내놓은 실험 결과를 확대 해석하고 오남용하면서 구체적인 수치나 실험 조건과 실험 방법, 전제, 가정, 실험 목적 등을 얼버무리거나 숨기고 그 실험을 인용한 반박이나 보충 등을 무시하거나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극단적인 결과만을 예시로 들먹이며]] 교묘하게 상관관계와 인과관계 등을 뒤섞어서 선동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해석해야 한다. 특히 황교익은 거증책임도 방기하고 문헌 해석도 못하고 근거도 부실한 상태로 설탕은 중독 물질이란 주장을 [[앵무새]]마냥 반복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 설탕과 도파민을 키워드로 검색해보면 황교익이 그 동안 설탕전쟁을 선포하며 언론 플레이 한 것들이 한가득 나오는데, 공통점으론 도파민만 들먹일 뿐 제대로된 근거는 없이 말만 조금씩 바꾸며 반복하고 있다. 이영돈이 MSG로 논란을 일으킨걸 저격했던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뻔뻔하다. [[https://entertain.v.daum.net/v/20181210091500972|#]] 수요미식회 하차 이후 나온 유튜브 채널 황교익Tv의 2주차 단맛 강의에선 또 백종원을 언급하면서~~2달 전에 그만하자고 한 건 황교익이었다. 북치고 장구치고의 훌륭한 예시~~마약엔 죄가 없고 설탕에도 죄가 없다 다만 '''당의 경계심을 무너뜨린 사람은 죄가 있다'''면서 우회적으로 비난하였다.[* 사실 영상 강의에서 나온 중독류 조차도~~교익스럽게~~ 게임중독과 결부시킨 허술한 강의다. 더구나 지적 댓글도 난무하는 상황.] 네티즌 반응은 싸늘하다. 백종원 슈가보이 드립도 이젠 꽤 오래 지났고 백종원 한 명 가지고 한국인의 단맛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란 건 명백히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허수아비 때리기가 나오는 것은 사실상 황교익이 공격하고 있는 것이 실제 백종원이 아니라 위에서도 언급된 바 있는 황교익과 언론의 프레임질과 기만질로 만들어진 허구의 백종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허구의 백종원은 설탕으로 대한민국을 병들고 썩어들어가게 하는 존재이자 모든 설탕의 사용과 단맛의 근원으로서 [[백종원/논란|설탕을 죄악시하는 언론들의 집중포화]]를 받은 바 있고, 심지어 그리스에 빗대어 한국에 경제 위기가 찾아올거라는 의식의 흐름 기법에 기댄 사설도 올라온 바 있을 정도이다. 그리스 경제 위기는 한국과 1:1로 비교할 수도 없고, 그리스의 위기가 건강한 식습관을 잃고 단것만을 먹어서 그런 것도 아니며 [[당의정]]에 빗대는 것도 요상하다. 문화는 어떤 원인에 의한 결과나 현상으로 해석해야 맞지 원인으로 지목하기 어렵다. 황교익은 자기의 유명세를 위해 프레임질을 하면서 가짜 권위를 만들고, 그 권위에 도전하는 모양새로 언론 플레이를 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있을 뿐이다. 고작 마리텔 시절 슈가보이라는 별명 때문에 설탕과 단맛 그리고 유행을 원죄로 짊어지라며 공격받는 백종원만 불쌍하게 된 모습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